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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월일은 없던 인간 없던 세계를 창조한 어버이인 거야 16-53 교조 120년제 기념 마크
 

 

 

 

널따란 이세상을 돌아다니며
일선 이선으로 도와가리라 九-1

First, Clapping around throughout the wide world,
And cleansing human hearts once and twice,
I will advance the work of salvation.

고생이 없도록 하여 줄테니
신의 마음에 의탁하여라 九-2

Second, Against any hardship I will protect you;
So lean closely on the mind of God!

살피니 세상사람 마음속에는
사욕이 섞이어서 있는 것이니 九-3

Third, Looking into all nonds of the world,
I find greed intermingled.
 

 90년대 초인가 보다 11월달도 제법 쌀쌀한 때라고 기억된다 서해안의 k시에 전도가고 싶어 보름정도 작정하고 떠났는데 그날짜를 채우지 못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전주를 지나 이리시가 보이는 들녘은 매우 넓었다 만경강 들이 그렇게 넓은 줄 그 때 알았다 저녁밥도 한 술 얻어먹고 싶고 잠도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어느 부촌을 찾아 들어간 집은 리장 정도 되는 집이었다

사정을 얘기하니 밥은 주었는데 아무리해도 미덥지가 않았는지 신고를 한 것 같았다 자다말고 경찰에서 불심검문이 있었는데 아마 당시 무슨 간첩사건인가 때문에 그렇고 그런 분위기에 리장님이 그렇게 배려(?)하신 모양이다 그런 경우는 공중포교를 나가 당하는 일인지라 별 겨의치 않고 그 길로 k시를 향해 박자목을 두드리며 갔었는데 그곳에 여장(?)을 풀자마자 또 경찰서에 신고를 한 모양이다 역앞의 고가도로 밑둥에 판자를 대어 지어진 친근하게 느껴진 집에 소개받았는데 그 의처증(?)이 발동한 바같주인이 신고하게된 것이다 아예 경찰서에다 앞으로 보름가까이 이곳에 있다보면 신고자가 많을테니 그리알고 대처할 것을 당부하고 사업(?)에 들어갔다

나의 여장이라야 교복과 박자목 양말 한컬레가 전부이다 교복을 입고 박자목을 두드리며 신악가를 부르며 유유히 다니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그게 신기한지 꼬마들은 꼬챙이로 뒤에서 야류를 먹이기도 하고 아낙들은 대문밖에서 신기한 듯 쳐다보기도 하는데 그 동네에 개가 그렇게 많은 줄은 -

개는 한 마리가 짖으면 영문도 모르고 따라짖는지 온 동네 개가 떼를 지어 짖는 통에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었다 시장통을 비롯하여 여객터미널 부근 등으로 신명을 전하고 나서 잠잘곳이 여의치 않아 둘러보던중 방치된 간이 방범초소 같은게 문짝도 제대로 없이 있길레 들어가서 잤다 교복을 이불삼아 뒤집어 쓰고 자려니까 행인이 지나다가 그곳이 외진곳이라 오줌을 갈겼다 엉겁결에 놀라 [거지는 사람도 아이가]하고 고함을 질렸더니 미안한 듯 도망가 버렸다

어느 날 박자목을 두드리며 지나니까 피골이 상접한 어느 50대 부인이 불렸다 어떤 종교냐고 물어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수훈을 권했더니 기꺼이 받겠다고 하였다 성심껏 빌어주고 며칠간 와서 기원해 주기로 작정하여 다음날과 그 다음날 그 댁으로 찾아갔더니 3일째 되는 날 봉투를 하나 내밀면서 그만 와야겠다고 한다

밤에 누우면 온갖 짐승들이 보이는 등 악몽에다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는데 그제와 어제 저녁에는 매우 잘 잤다 그러나 나는 조부때부터 천주교를 신앙했는데 어제 선생이 돌아가고 나서 천리교 선생이라는 걸 알고 집에 난리가 났는데 생각해 보니 병이 낫는다고 하여 개종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니 그만 오라며 2만원이 든 봉투를 내밀며 매우 미안한 듯 하면서도 감사의 표시를 해 왔다

밖에 나오니 갈등이 되었다 땡전 한닢없이 공중포교를 하던 습성이 들어 있었는데 갑자기 거금 2만원이 생겼으니 이걸 차비하여 집에 돌아가느냐 마느냐의 갈등이 엄습했다 계획은 이곳에서 고생 좀 하다가 며칠 예정으로 걸어가면 무사히 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근근히 일주일만에 돌아가면 신님은 몰라도 우선 가족들 신자들 보기에 신용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도 같아 망설이고 있었다

그래 됐다 저 양반은 신자될 사람도 아니니 기어이 신전에 올려놓고 기원해주지 않아도 내가 배가 고파 사먹는 것도이 될지 모른다 떡본김에 제사지낸다고 맛있는 밥한그릇 사먹고 차비하면 딱 맞을 것 같으니 이걸로 그렇게 하자는데 결론을 내리고 전주까지 걸어와 감자탕이라는 간판앞에 머물렀는데 무슨 고기같은 메뉴를 찾았더니 감자탕을 권했다 나는 감자는 싫어하니 고기종류를 주라고 했더니 감자탕이라고 하여 감자가 아니라고 하여 감자탕을 먹었는데 아직 생전에 그렇게 맛있는 감자탕이 있는 줄은 들어도 보지 않았거니와 처음이었다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음에 오토바이탄 신자분(떠나고 없지만)과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하다 아무리 감자탕을 찾아도 없었는데 충북 단양에서 감자탕을 만나 먹어보니 기대 이하였다 그때 전주에서의 감자탕이 굶주리다 먹어서 맛이 있은건지 아니면 주인장 솜씨였는지 지금은 아리송할 뿐이다

그날 밤 늦게 우리 포교소에 돌아왔더니 연탄불을 끄고 아이들이랑 자고 있었다 이 추운날 연탄불을 왜 끄고 잤느냐고 나무랬더니 당신은 바깥에서 잘곳조차 제대로 없어 헤메고 다닐지도 모르는데 따신방이 죄송스러워 불을 지피지 않았다는 거다 불지피라고 아궁이와 구들을 잘 고쳐(?)놓고 떠난 본치도 없이 말이다

하늘같은 남편이자 괴살(?)스런 소장 왔다고 불을 지피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려니까 도저히 등찜이 뜨이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몽롱했다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하면서도 못일어 났는데 아내는 일어나다 말고 쓰러졌다 이상타 아이들이 토하게 되어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이상했다 늦게야 신자가 와서 겨우 일어나 앉아 왜 정신이 이런지 어지럽다며 쓰러질 듯 누우니까 연탄가스가 아니고서는 그럴리가 없다는 거다

우리포교소의 화생방 설비는 완벽(?)하다고 자부했는데 가스라니 말도 안되었다 굴뚝으로 나간 가스가 다시 창문으로 들어오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구조라고 믿었었다 그러다가 방과 부엌사이를 가르키며 이곳이 아니고서는 하고 의심하며 장판을 일으키니 아니나 다를까 1cm정도의 폭에 약 10cm 길이로 홈이 패여 있었는데 구둘을 고치면서 합판과 바닥사이 문틀 밑을 제대로 채우지도 않고 재세도 않았던 것이었다 종이를 넣어 연기를 올려보니 아예 굴뚝이었다 아불싸 큰일날뻔한 일이지 않는가

우리각시의 남편생각하는 일편단심이 아니었든들 좋아지자고 작정갔다 돌아오니 가족이 자살(?)했더라는 추정을 낳든지 아니면 내가 계획적으로 구둘을 만들 때의 고의로 타살의혹(?)을 받는 불쌍한 운명이 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시렸다 수훈을 받았던 그 부인이 나를 좇아보내준 덕분이었다며 엎드려 고마움을 표시하고 당신이 못난 남편 생각하는 마음에 식구들이 안전하게 되었다며 그나마 그런 부인을 통해 차비까지 마련해주시며 빨리 돌아가도록 섭리하시고 가르쳐 살려주신 수호에 감사를 수 없이 되뇌었다 당신이 그런 생각을 갖고 불을 지피지 않았던 것은 세상에는 아마 없을 그런 큰 진실이 오늘 아이들과 당신을 만난거라며 神God에게 감사드렸다

요즘 집사람은 하루에 60리 길의 산고개를 거의 매일이다 싶이 넘고 있다 아! 오야사마 어깨띠를 두르고 이 무더운 삼복더위에 오늘이 11일간이나 쉬지 않고 걷고 있다 연달아 11일간의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내가 그동안 삼복더위(7월 20일부터 30일까지)에 열흘간이나 수고많았다고 했더니 11일간이라고 수정해 왔다 신악가를 부르며 고개위에서는 박자목을 두드리며 혼자 신명나게 미쳐있다 남편이 공중포교나가 추울까봐 연탄불도 넣지 않고 잔 것이 기특하여 대신 더운데 고생하는 아내 생각하며 아무리 더워도 선풍기를 켜지 않아야겠다며 비지땀을 흘리며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각설하고-

그러한 사건을 통해 생명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고 이렇게 살려지고 있다는 고마운 은혜를 위해 다하며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다지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되었다 지금도 부엌에서 가스냄새로 문을 화알짝 열어젖히고 일하고 있는 아내의 소원(?)은 그리 고급스럽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아! 오야사마 - 거적대기를 이불삼아 눈 바람을 피할 때는 오야사마가 추운 겨울 이불없이 신발을 베개삼아 주무신 옥중의 노고를 생각하며 그래도 그 때보다 낫다며 채찍질해 왔습니다

신고받은 무장경찰한테 연행되어갈 때는 집터에 묻힌 보물을 캐러왔다며 오히려 격려를 아끼시지 않으신 오야사마의 그 크고 깊은 어버이마음을 생각하며 흥겨운 마음으로 취조를 받았습니다 오야사마! 당신의 아들이 만사람의 심정이 되어보려 모본의 만분지 일의 흉내를 내어보고 내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사옵니다 오야사마가 걸어두신 모본은 틀림없습니다 가난속에서도 가난하지 않는 마음 오로지 으뜸인 리를 비전으로 꿈과 희망을 안고 영원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구극의 길이 틀림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저 피붙이 형제들이 오야사마가 남겨두신 모본의 만분지 일이라도 흉내내어 제가 맛본 그 참맛들의 일부라도 보여드리게 할 수는 없을까요 무능하고 부덕한 저에게도 힘을 주시고 용기와 지혜를 주시어 만사람을 구제할 수 있는 리를 내려주시고 부디 함께 해주시고 데려가 주소서!
아! 오야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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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행은 온 세상을 구제하는 길 벙어리도 말하게 하리라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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