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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聖人의 반열에-
월일은 없던 인간 없던 세계를 창조한 어버이인 거야 16-53 교조 120년제 기념 마크
 

널따란 세상이나 나라안에는
석재도 목재들도 없을리 있나 八-1

First, In this wide world and its many countried;
Are there no stones or standing trees?
신기로운 역사를 할 것이라도
누구에 부탁하지 않을 것이니 八-2

Second, Though I carry out marvelous construction,
I never ask a favor of anyone.
모두 차츰차츰 온 세계에서
모여들 것 같으며는 이루어진다 八-3

Third, All coming together from the world one after another,
It will be accomplised.
 

 

 

대통령구세주  성철스님  미수가루
[돌아왔으면 내 몸 탈과 비교하여 같은 것이거든 청소를] - 인간의 지혜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신상과 사정으로 괴로워하는 자가 이 길에 들 게 되면 神God이 계심을 빨리 징험할 수가 있다 [신상과 사정은 이치의 꽃]이라고 하셨다 자기가 징험하지 못한 일을 남에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자기가 먹어본 맛이 아니고서는 그 맛을 어떻게 전할 수 있겠는가

죄송한 표현이지만 당신이 혹시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는 앉은뱅이라고 한다면 무척이나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에는 자살같은 극단적인 생각도 해 볼 수가 있을 수도 있으리라 본사이트를 드나들다가 차물의 리를 듣고 영혼은 온전하다는 것을 깨닫고 심혼을 다바쳐 귀를 기울이며 근행을 실천하고 남에게 본 사이트를 권하는 것을 일과로 하는 생활을 한다고 치자

앉은뱅이가 도와지는 것은 바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다만 창조주의 아들됨을 깨닫고 흥분될 정도로 혼신을 다해 의탁하는 마음이 생긴 어느날 뿌더덕 거리며 앉은뱅이가 일어섰다면 아마 당신도 더욱 미치지 않고는 못배기지 않겠는가 이것은 실제의 상황이다 天理敎의 初代들은 이렇게 하여 길을 열기 시작하셨던 것이다

결혼할 무렵에는 조그만 식당을 차려서는 곧장 까먹고 말았다 아마 손가락으로 꼽으면 서른가지도 넘는 노점장사를 했다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었다 광주리장사 고갈비 포장마차 제고난 숟가락장사에서부터 통닭 아이스케끼 등 안해본 것이 없다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튜브를 쌓아놓고 파는데 아직 신혼과 같은 남편이 처량해 보였던지 한숨이다 쭉쭉 뻗은 미인들이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데 유독 나만 불행해 보이고 못난 것처럼 보였다 그 많은 노점장사를 하며 한푼도 집에 갖다 주지 못했다

가족끼리 놀려왔으니 통닭이 잘 팔린다며 어떤 사람은 10마리째 팔았다고 자랑이다 튜브는 새댁인 집사람에게 맡기고 통닭 두 마리를 받아와 하루종일 다녀도 결국 한 마리도 못팔고 한 마리는 뜯어먹고 한 마리는 보관비에 넘겼다

아마 결혼 2년동안 단돈 10원도 못벌여준 사람은 한국땅에 나밖에 없으리라 장사가 제대로 되었다면 서른가지도 넘게 장사를 바꿀 필요도 없다 얼마전 숟가락 장사를 비롯해 냉차 아이스케끼 장사까지 손가락을 접혀가며 세다가 다 세지도 못하고 기억도 할 수 없다고 아내가 말한적이 있다

어느해 여름 무엇을 해볼까 남들하는 것 보면 할 것은 많은데 막상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여름철인지라 해운대에 가면 무슨 귀연(?)을 만날지 모른다는 심정으로 해운대에 갔다 밑천도 없거니와 뭔가 할 것만 생기면 무슨 수가 안있겠나 싶었다 아이스께끼 통을 메고 손님이 모인 곳에 가서 잘도파는 모습을 보고 저거라면 나도 할 자신(?)이 있었다 그 집에 찾아가 나도 아이스케끼 장사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통값을 맡겨놓아야 된다는데 돈이 없었다

사정사정해서 말로써 보증을 서고 한통가져왔는데 도저히 입이 안 떨어져 한 개도 못팔고 케끼 통위에 앉아 꾸역꾸역 나는 눈물이 멈칠줄 몰랐다 할머니들이 놀러와서 이 꼴을 보고는 무슨 사연이 있는가 싶어 물어도 울고만 있으니 자기들이 통속에서 꺼내간 11개 팔린게 케끼장사 시작이자 종말이었으며 죽기로 결심한 동기가 되기도 했는데 용기가 없어 못죽었는지 이 길에 들어오자고 그랬는지 죽지는 못했었다

죽을려고 동백섬 자살바위(?)에서 세상을 한탄하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런 용기가 없다 자신이 없었다 껌팔이와 신문팔이 지게꾼이 부러웠다 저런 거라도 하면 되겠는데 용기가 없다 하나있는 딸은 할머니가 키울테고 저년(?)은 어느놈 배밑에 깔려 히히덕꺼릴 것을 생각하니 심한 질투심이 일어 저년도 죽이고 죽자는 생각도 해 보았다 워낙 무능해 놓으니까 좌절에 빠져 있으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비아냥거리는 것 같았다

하루에 500원씩 차비만 얻어(?)다가 하루종일 이것 저것 기웃거리다가 돌아오면 파김치가 되도 제대로 먹을 의욕도 없이 죽고 싶은 마음이 지배했다 가슴은 답답하고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았다 우울증에다 신경과민까지 겹쳤는지 조금만 빌은 소리를 해도 얕잡아보는 줄 알고 성이나면 니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이판사판이다 꼭 피를 봐야되고 뭔가 두드려부숴야 속이 좀 편하는 지옥같은 생활이 이어졌다 저 놈이 어릴 때는 난지랍고 싹싹했는데 왜 저리 되었노 푸닥꺼리를 한다 내가 싫어하니까 어머니와 집사람은 짝궁이 되어 바닷가에서 비손을 하고 그러는 모양이다 약간 정신이 이상해 진 걸로 본 모양이다 나는 말짱한데 말이다 요새같으면 노숙자가 되고 가정은 파괴될 그런 운명이 엄습해 온 것이었다

그런 어느 날 지병이 도졌다 철따라 아픈 병인데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보름정도 맥을 못추었다 아마 귀신병인지 아무리 약을 먹고 해도 효험이 없다 어머니는 칼을 가져다 무리친다고 하기도 하고 객기가 들어서 그렇다는 등 그러는 병인데 아무 이상없이 힘이 빠지고 의욕이 없이 땀을 팥죽같이 흘리는 시름병이다 총각때 어느 날 객지에서 그 지병이 도져 아팠는데 먼 친척뻘되는 고향 아지매 집에 갔다 하루저녁 아파서 신음하고 흘리는 끈적끈적한 땀을 보더니 놀래서 영장치기전에 자기 사위 개인택시에 태워 부산 남항동 그 을신년스러운 왜식 2층집까지 무료로 태워보냈다 일년에 한두차례 꼭 연례행사처럼 아팠는데 왜 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 지병(?)이 도졌다는 것이다

그때에 - 아프니까 참좋다 이대로 아파서 일어나지 못했음 좋겠다 차라리 이게 낫다 온만신을 방황하며 기웃거리는 것(?)보다 몇배나 낫다 머리도 짚어주고 걱정을 하는 폼이 진정인 것 같았다 기웃거리고 다닐 때는 무능하게만 여기는 듯해서 과민 신경증이었는데 이렇게 누워있으니까 참 좋다 이제 일어나지 말아야지 오래 오래 아프고 싶었다 그런데 이 병은 보름정도 지나면 괜찮아지는게 문제였다 그렇게도 낫기가 싫었는데도 어느 새 좋아졌다 그래도 아픈 척 했다 수염을 깍지 않고 누가 방에 들어오면 신음소리를 간간히 내며 연기를 했다

아무 자신도 없는 내가 할 것이 뭐가 있을까 죽자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을 생각만 가득했다 차라리 원자폭탄이라도 터져 세상이 완전 망해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잘사는 넘들 넘어지고 도망가는 꼴 좀 보고 박수라도 치고 싶은 그런 나날이었다 그럴즈음 몇 년동안 우리방에 있어도 보이지 않던 책을 보았다 그것이 오야사마가 걸으신 길을 적어 놓은 [모본을 보다 가까이: 아직 사이트 출판 안했음]라는 책이다 처음에 이런 거짓말이 어디있나 황당하다는 생각이었는데 페이지를 넘겨갈수록 그 속에 흠뻑 빠졌다 세상에 이런 길도 있을까하는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네 살 때 폐병으로 돌아가셨다 세 살 때 어머니 등에 업혀 아버지와 함께 天理敎에 갔다고 한다 그때는 왜무당쯤이라고 믿은 모양인데 1주일 정도 묵으신 옥골의 그 교회에 계시다가 돌아오시어 이듬해 운명을 달리하셨다 옳게 믿지는 않았어도 쇠죽을 끓이시며 부작대기를 악기삼아 [악한 것을 제거하고]를 외우셨다고 한다 별 소득본 것도 아닌 신앙이지만 천리교에 대해 남다를 애정이 있었든지 일년에 몇 번씩 큰 제일 때 정도 다닌 인연이 있어 곶힌 책이었다 그리고 가까운 친척이 아버지의 전도로 천리교를 신앙하고 있었다 그곳은 큰 교회로 잘되어 있는데 우린 완전히 망쪼다

어머니도 이것 저것 돌아보지 않고 인연자각을 하여 포교를 하셨다면 좋았으려만 그때는 천리교 믿으면 병낫는고 외치고 다니면 줄줄 따라왔다는데 환자 데려다놓고 냉수욕하고 근행보며 살려내라고 신님께 떼만쓰면 환자가 살아나온 때라는데 물좋은 그때 포교라도 했더라면 이런 액운 안만났을 만도 한데 그런 깊은 인연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책을 보고 무언가 느끼고 있을 때 문밖에서 도란도란 어머니의 이야기 소리가 났다 [저 자식 성깔머리하고 행우지 보면 니가 올바른 정신으로는 질내 못살끼라고 본다 허지만 천리교 강습 3개월을 맡고나면 뭔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하는데 속으로는 은근히 좋으면서도 내 한테 허락받으러오면 성부터 내야지 그런데 가면 직인다고 해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니 제집을 천리교 강습을 보내야겠다 나도 강습이라는 것 안 받았으면 이 집구석에 붙어 살았지도 않았을낀데 거기 갖다오면 마음붙이는게 다를끼다고 했다 성부터 일단 버럭 내놓고는 안된다고 했다 속으로는 좀 좋으면서 이제 내가 행토가 나와도 좀 참겠지 싶었다

그리하여 1982년 7월 20일 어린 딸과 함께 강습소로 들어가고 나는 며칠 뒤 용기를 얻어 나도 다음에 강습을 가야겠다며 그 길로 아내와 딸의 강습비라도 벌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리어카 하나를 사달라고 해 포도를 팔기도 하고 추석무렵이 되어서는 밤과 대추도 팔았는데 재미가 제법 붙었다 용기가 생겼다 그해 가을 밤장사하여 두달만에 600만원을 벌였는데 빚진 것 다 갚았다 빚진 것만 갚고나면 천리교 강습가려고 약속했었는데 두달만에 당시 600만원이면 거금인데 빚갚고 나면 강습가겠다는 나의 소망을 이루게 해주시기위해 그런 큰 돈을 꼭 빚진 액수만큼 벌 게 해 주셨는데 그걸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런 신기한 돈맛을 보고는 돈에 재미를 붙여 그만 강습은 뒤로 젖혀두었는데 그해 겨울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랐다 이듬해인 1983년 4월 20일 내 운명을 송두리째 바꿀 강습소에 입소를 하고 바로 이것이 내가 찾는 그 진실이었음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강습갔다가 바로 마이크하나만 달랑들고 포교라며 아무것도 모르고 오로지 이 귀중한 구제사업을 남들한테 맡겨둘수만은 없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정처없이 떠나왔으나 보름만인가 마남님(?)한테 붙잡혀 올라와 얼마나 크게 싸웠는지 모른다 싸움말리려 처형이 오고 미국 저거 오빠한테 보내자는 소리가 나온 것이 그 무렵이었다 한번 든 바람이 어머니와 아내의 만류에 주저앉을 내가 아니다 시집을 다시가던 엄마가 죽던 그런 것은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끌려(?) 왔어도 하는 폼이 올바른 인간될끼라고 안봤는지 고집으로 이겼는지는 몰라도 제법 단도리한다고 미수가루 2되와 휴대용 마이크에다 개인용 텐트까지 밑천 삼아 허공을 딛(1983년 10월 5일)으려 나오고 나서 우리집은 망쪼가 들었다며 산산조각이 났다 어머니는 노점에서 푼돈 벌어쓰는 자기를 믿고 미쳐나갔다며 집을 나가셨고 아내는 허탈해졌는데 그 때 집을 맞추자니 희망이 없고 세계구제에 맞추자니 집안이 콩가루가 될 판일 때의 내 생각은 [운명이라면 살아있겠지 산입에 거미줄 칠까 죽지 못해 살았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굶어도 용기와 힘을 주신 천국을 떠나지 않아야지]라는 생각으로 [神을 맞추면 영원히 살고 가정을 맞추면 지금만 산다]는 마음으로 신한줄기 길에서 고생을 낙으로 지낼 즈음 개인용 텐트 움막속에서 지낼 무렵 - 예비군 통지서 전달왔다가 옆에서 그 사람이 누구요하고 물어도 창피해서 남편이다고 대답도 못한 아내가 고생같이 하겠다며 합가(?)를 선언했으니 어찌 그간의 이런 저런 사정을 다 말할 수 있으리오

이 길에 돌아와 내 몸의 사정을 비춰보고 달랑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감나무의 감 - 까치가 쪼아먹다남은 단 하나의 감 - 언제 흔적도 없이 되어 버렸을지 모를 나의 운명을 되돌아 보고 나의 감나무에도 주렁주렁 생감 단감을 열리게 하고 싶다 그 감나무에 주렁주렁한 감이 열리게 하기위해서는 남의 죽어가는 생명에게 신의 소리를 전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길을 떠났던 것이다 이 금지옥엽같은 진리로 3년만 고생하면 교회가 될 것 같기도 한 착각도 없잖았다

가족 포교의 극기 훈련은 3년이 아니라 이제 거의 20년이 되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어도 배고프지도 춥지도 않았다 살아있는 지옥에서 살아있는 천국을 발견하고 그 천국을 일러주려 박자목을 두드려온 지난날 이제 그 진실로 세계를 움직이려하고 있다 연탄가스에 죽을 뻔한 사정에서부터 기적적인 여러 징험들은 구제의 발판이 되리라 그런 극기훈련(?)으로 비방과 조롱을 감내하지 않았다면 누가 나에게 천신이나 할 것 같은가

더러운 성깔머리 이 길을 걷는다고 금방 없어진 것도 아닌 성깔 때문에 밥상이 벽에 갖다 붙기도 했고 집사람 갈비뼈가 금이 가기도 했다 그 뿐인가 헤어지자며 서로가 氣를 죽이지 못해 법원앞에까지 가서 돌아온 적도 있었고 데모하다 구치소에 감금된 저력까지 있는 별난 종자이다 이제 대자유의 길을 세상에 이야기하려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세상사람들이 오해할 것도 같다 [여기 적힌 저 진실한 교리를 전하는 사람은 매우 진실하고 착하겠지] 하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안된다 싶다

나도 본전이 나오면 깡이다 20년 동안 갈고 닦았다고 성인이 된 걸로 오해하지 말았음 싶다 사람은 가까이서보면 티끌이 더 잘 보인다 혹시 내가 한 이런저런 진실한 얘기들에 꼬여서 믿으면 안된다 그렇게되면 후회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교도소 유치장에 갇혀 있을 때 아침저녁으로 누가 뭐라고 해도 근행을 보고 오후데사키를 읽으며 오야사마가 18번의 옥살이를 하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죽을 운명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이곳에다 격리시켜 주신 고마운 마음에 벅차있는 나의 모습은 분명 쇠창살속에 있으면서도 갇힌 마음이 아니게 느껴진 모양이다 나도 출소하면 소장님을 따르겠다던 그들(그 가운데는 화폐 위조범에다 조폭의 부두목도 함께)이다 말로만 그런 줄 알았는데 실제로 왔었는데 움막에 쪼그리고 있는 폼이 저거들하고 파장이 영 안맞았는지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간 것은 그들뿐만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진실해서 이 길을 죽자사자 믿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길중에 길이 오로지 이 길밖에 없어서 이 길을 갈뿐이다 사실 당신이 덜된 마음갖고 와서 믿겠다면 걱정이 태산이다 당신 눈에 보여줄게 있어야 금방 만족시켜 줄텐데 며칠도 채 못보고 믿을 게 제대로 없다며 개나리 봇짐 쌀 것만 같은 당신에게 무슨 말로 꼬셔야 할까 그게 걱정이다 아무도 오지 않을 줄 알면서도 두드려온 박자목이다 아마 사나흘만 따라 다니며 두드리고 나서는 [소원이 이루어졌나]하고 이리저리 살필 당신을 생각하면 안스럽다 아직 한번도 이만큼 했는데도 왜 안되는가는 생각은 못해봤다 그런데 조석근행 며칠만에 왜 안되느냐며 따지고 들면 난감하기 짝이 없다 그런 당신을 데려다 무엇에 쓸꼬? 혹시 한닢 돈에 마음이 뺏겼다면 몰라도 -

삼풍참사때 현장 차바퀴와 친구하는 나를 보고 어느 말총머리 총각이 기어코 따라올려고 해도 내가 거부했다 엑스포에서 교복을 입고 매일 박자목과 부채도사(?)를 연출하는 나를 본 사진사 아저씨도 오겠다는 걸 내가 거부했다 겉만보고 와봤자 며칠 견디지도 못할 것 [.]표보다야 [,]표가 낫지 않을까 싶어서다 와서보고 신물나지 않으면 오늘 이런 사연을 보고 마음을 다져먹고 용재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나 스스로 박탈하지 않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아무리 해도 오야사마를 가르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들어보고 진리가 틀림없다면 나와 길동무를 하자는 거다 내가 가르키는 방향이 틀림없는 진실이지 나를 보지마라 성인이 아님을 거듭말해 두는 바이다 성인은커녕 지금도 낯선 여자랑 한방에 자면서 내시처럼 지낼 위인도 그냥 고이즈며 보낼 그런 위인도 못된다 이메일로 광고들어온 포로노도 보았고 지나가는 처녀 엉덩이도 보이는 그렇고 그런 속물이다 갋아줄 일 생기면 끝까지 갋을 일은 갋고 끝을 보는 그런 깡도 있고 이유없이 건드리면 벌컥벌컥 화도 낸다 장작패는 소리만 내뱉는다 좀 살갑게 하면 어디 덧나는지 아직 마음이 맑아지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 덜익은 사람이 단노나 참회를 이야기한다고 다 되었다고 절대 오해없기를 바란다 그런 넘인줄도 모르고 바깥만 봤는지 국운인가 무슨 책에 [꼭 당신이 앞으로 이 나라를 구제할 대통령인가 구세주가 된다]고 써 놓았다며 호들갑을 떤 자도 있었다 대꾸도 안하니까 [종교하는 사람에다 남도출신에다 봉사라면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데다 성씨까지 같지 않느냐]며 내기(?)까지 걸겠다나 맡겨주면 못할 리도 없겠지만 준들 할 사람도 아니다

이 길을 전할라면 대통령후보가 되어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에서 인류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근행을 멋들어지게 보는 것을 세계에 생중계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유세장마다 다니며 포교를 하며 느낀일이다 아무것도 아닌 저 난장판은 선전하는데 천하제일의 으뜸인 리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까 우짜면 이걸 알리나 싶었기 때문이다

혹시 맡겨주면 안하더라도 이 나라의 국운이 정말 열릴거라 나한테 맡기로 올 정도 되몬 높고 똑똑한 사람들 다 죽었거로 어림도 없는 얘기겠지만  -그래 근행도 보고 전도포교도 하면서 하라쿠몬 이 나라를 몽땅 아니 세계를 몽땅 창조주God의 참자녀를 만들면 되겠지만 대통령 저거 할배보다 말대 만대까지 용재되는 이것보다 좋은게 없다 나같은 쑥맥을 그렇게라도 볼 수 있는 것은 어쨌든 기분나쁘지는 않았다 하기야 며칠 전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빛고을 광주에서 대통령이 흘리는 눈물을 보고 연민의 정을 보낸적이 있다

혼자 내 집에서 한 이야기가 얼마나 크게 들릴지는 몰라도 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 쓴 글이었다 각설하고 겉으로 꼬시는 말만 믿고 찾아와 며칠도 못가서 고무신 거꾸로 신는 그런 사람을 모으기 싫어 세월을 낚아왔던 것이다 꼬시듯이 사정하듯이 믿어보라고 하니까 그렇게 좋은 교리라면 왜 사람이 없노 내만 사기당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그 속내가 싫어 함양되어야 할 교리가 되튕겨나오는 것같아 말하기 싫었을 때도 있었다

종교라는 허울을 뒤집어 쓰기는 했어도 본능을 제어한다는 것은 간단치 않을 일임을 절실히 느꼈다 아마 십계명을 만들고 오계를 만드신 분은 그런 원죄적인 충동이 전혀 없었을까 아니다 만약 그분들이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제어하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았고 체험했지 않은 상상을 간판에 걸었다면 아무도 그들을 따르겠는가 저 세상을 다 깨닫고 유명하다는 성철스님도 임종계에서 색을 속인 죄가 지옥에 떨어져도 모자란다고 하지 않았는가

다만 종교신앙을 하면 작은 잘못도 크게 느껴지기에 잘생긴 긴치맛단 째진 가랭이만 봐도 무슨 죄지은 것 같이 느껴지는 것 아니겠는가 교회성당이나 절에 간다고 제일 좋은 옷 입고 신불께 잘 뵈일거라고 목욕재계하고 왔으니 본능거세를 한 것도 아닌데 불끈불끈 안 솟았겠나 선진국의 고아원이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사랑나누어 태어난 새끼들을 공동소유로 키워온 것이 시초라는 것 어디 신문이 할 일없어 써냈겠나 말이다

종교가 무슨 속성교환소라면 몰라도 하루아침에 저절로 종교가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리라 정말이지 부족하기 이를데 없는 머슴 출신에다 아버지 없이 자라 밥상머리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호로새끼다 아버지 형님 제사는 내가 모시지만 그 외엔 갈 수 있는 입장도 아니지만 돌상놈 될까봐 몇 년 전부터 집안 시제에 나갔는데 무슨 말끝에 호로자식 호로새끼 소리를 거듭 들을 정도가 바로 나라는 존재이다

아버지 없이 자란 설움이 너무나 한이 되어 내 새끼 자손만대까지는 호로자식 안 만드는 그런 감나무가 되기위해 이 길에 온지 20년이 되었지만 간판에 욕먹이지는 안해야겠다는 굳은 마음하나 덕택에 닦는다고 닦아도 또 묻어나는데 아마 몇 번 환생을 거듭해야 될 모양인데 다음생에 이 길에 온다는 보장도 없는지라 우째도 신님God과 오야사마가 좋아하는 일하여 다음생 또 다음생 죽고 죽어 억만번을 고쳐죽고 자손만대까지 오야사마와 함께 살 그 마음밖에 없다 다시 또 이 길을 가기위해 혼에다 확실한 증표를 마련코자 살아서 환생하는 리를 발견하고는 3년 3개월이라는 태초의 잉태 시순에 맞춰 부부함께 6좌근행을 작정했었고 유서까지 만들었었다

내가 말하는 이런 이야기에 꼬여서 오지마라 솔직히 말해 모든 사람이 창조주를 영접하여 행복을 구가하는 것은 창조주의 뜻이자 나의 절대의 사명이다 그러나 교회 크게 만들어 떵떵거리며 살기는 싫다 그리고 억지로 믿는 것처럼 나이롱 신앙에다 불만부족을 보내오는 것도 싫다 죽이 끓는지 밥이 끓는지 나는 잘 모른다 부부가 함께 오로지 하늘의 이슬을 따먹고 산다 정성으로 가져온 돈 먹은만큼 수만배로 구제의 길에서 남에게 미치지 못한다면 오히려 하늘에 빚만 지고 산다고 입버릇처럼 자식에게 가르친게 싫은 모양이다 그래도 다른 건 다 봐줄 수 있는데 이 고마운 길 가지 않고 엉뚱한 짓하면 죽어서도 그냥 안둘거라며 유서까지 쓴 악종이다

애비가 하는 말은 죽을 때하는 말이 아니라도 언제나 유언이다 유언은 미물인 청개구리도 듣는데 하물며 神God의 자식인데 창조주God를 들먹이며 하는 얘기인데 어찌 이를 거부하랴 내가 초대로 있은 天馬의 후손은 장남을 0순위로 하는 후계자를 빼놓고는 모두가 초대의 초심에서 자기 후손을 책임져야 한다 개인재산은 단돈 10원도 없다 그것만이 말대까지 행복을 갖는 길이다

개인재산이 없더라도 고생하지 않을 것이니 충분히 장작도 양식도 없는 - 오야사마가 걸으신 그런 간난고로의 길은 없을 것인즉 그런 길은 오야사마가 만인을 구제하기 위해 걸어두셨다 초대 또한 만대의 토대를 위해 반분의 길이라도 걸어 토대를 다졌느니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일러주었다 나는 후계자를 믿는다 아마 저 위대한 회생의 모험자도 그걸 믿으셨겠지 아직 게임은 끝난 것이 아니니까

[이 길의 사람은 神God이 수호한다 차물의 理를 듣고 깨우친 자는 마음이 착한 인연 用材는 전답이 필요없다 전답은 세계신자들의 것이다 지금까지 만들었던 마음을 가지고 구제 길에 나서면 神God은 잘한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별석을 마친者는 잘 듣고 분간하라 이 세상 인연의 리를 듣고 분간해서 재산을 팔아서라도 사람을 도와라 이에 반항하면 생명과 재산은 神God이 앗아간다 이것은 언제 있을까 생각마라1901.3.16]

당신이 바로 널따란 이 세상에서 神God이 점찍어 둔 석재 목재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아마 순조로운 삶은 아닐지 모른다 그것은 神이 당신을 이끌어 들여 소용에 쓰시려 이치의 꽃을 피우려 마디를 주시고 계시는지 모른다 내가 만약 그런 모진 마디를 통해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지 않았다면 나는 종교할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

일반 종교의 교리를 듣고 감동할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창조주의 十全의 守護와 으뜸인 理를 전해듣고 영원한 희망을 얻었던 것이다 이제 온갖 세상사람들의 어두운 가슴에 빛이 스며들 것이다 당신도 여기까지 들어왔다면 그 희미하나마 빛을 보지 않고서는 이 깊은 곳까지 항해의 노를 젖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형제여! 당신을 聖人의 반열에 올려놓고 싶다 세계모든 인류를 成人으로 만들고 싶다

아! 오야사마! 방황하는 영혼의 고아들에게 밧줄을 내려주옵소서 그리하여 저들이 그 밧줄을 힘껏 당길 수 있게 도와주소서 저들은 아직도 당신의 실체를 잘 모르고 있나이다 그들의 눈을 뜨게 하소서 혹여 주신 생명을 스스로 끊을려는 불효를 아무런 가책도 없이 준비하는 그들의 양심을 움직여 주소서! 그들의 귀가 열리게 하소서 그들의 가슴에 빛이 되어 주소서 그들을 대신하여 용서를 비는 저의 애절한 진실을 받아주소서 아! 오야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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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결심한 자들아!

 
이 근행은 온 세상을 구제하는 길 벙어리도 말하게 하리라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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