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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참회
 월일은 없던 인간 없던 세계를 창조한 어버이인 거야 16-53  교조 120년제 기념 마크

 

 

잘도잘도 근행하며 따라왔구나
이것이 도움의 근본이 된다 六-4
Fourth, I am pleased that you have followed to join the Service.
This Service is the fundamental wayb for salvation.

언제나 신악과 손 춤을 추면
언젠가는 진기한 도움있으리 六-5

Fith, Always performing the Kagura and Teodori,
In the future I will work remarkable salvation.

분별없이 함부로 원할지라도
받아주는 방법도 여러 가지라 六-6

Sixth, You make prayers thoughtlessly.
The ways of My response are also a thousand.
아무리 신앙을 하였더라도
마음자리 틀려서는 아니 되노라 六-7라

Seventh, However eagerly you may believe,
Never entertain wrong thoughts!
 



 참다운 신앙을 하게되면 겸손해 진다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천리라는 이법이다 신앙이 없을 때는 제멋대로 사는 세상인줄 알고 인간의 법에 어긋나지 않으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해온 사람들이 천리라는 엄연한 법에 어긋나면 천형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므로 겸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인간은 우주적인 원리에 의해 우주의 법칙으로 창조된 작은 우주이다 당신이 인간으로 태어나 지금도 인간의 옷을 입고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고귀하고 자랑스러우며 선택된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본다면 겸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리고 생명의 신비를 체득하게 되므로 생명을 주신 분에 대한 경외감이 겸손하게 만든다 또 차물의 理를 깨닫게 되면 인간으로 태어난 수호가 얼마만큼 감사하며 지금 살려지고 있다는 진실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겸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신앙이란 굴복이다 인간의 지혜로서 깨닫고 만든 종교라면 대등한 위치에서 존경심을 금할 수 없는 차원이겠지만 조주God의 아들이라는 관계를 직시하게 되면 꿇어 엎드린다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신앙은 참회
이다 참회는 꿇어 엎드려 빌어야 한다 꿇어 엎드려 빌지 않고 거만하게 당신이 그 전지전능하다는 창조주라면 이걸 한번 해결해보라 그리하면 내가 믿을꺼마 하고 대들 듯이 따지듯이 한다면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을 것이다 꿇어 엎드려 빈다는 것은 곧 굴복하는 낮은 자세여야 하며 꿇게된 분의 뜻에 맞춰야 된다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쯤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그런 마음으로 변해야 한다

뻣뻣한 사람보고 그런 신앙자세로는 도움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낮아져야지 꿇어 앉히게 되면 반항하지 않을자 있겠는가 바탕이 덜 된 사람은 아주 기본적인 자세형성에도 평생이 걸릴지 모른다 그걸 고쳐주면 올곧게 듣게만 되면 누가 마다하겠는가마는 쇠귀에 경읽는 꼴이다

말을 하면 스며들 듯 빨아들이는 혼이 있는 반면 당구공이나 탁구공이 되돌아 오듯 받아들이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데 그래서 구제가 어렵다고 하는 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신앙은 굴복하여 비는 것이다 비는 것에도 창조주God의 뜻에 맞게 비느냐 내몸 내 형편에 따라 비느냐는 매우 중요한 리로써 돌아온다 천리를 듣고 내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는 것과 나의 잘못은 아예 생각조차 않고 소원을 설정하여 그것을 이루게 해주면 좋은 신이요 입맛에 맞다며 날뛰다가 어쩌다 환란이라도 닥치면 신이 없다며 이만큼 했는데도 수호를 해주지 않는God라며 배신하게 되는 신앙이 된다 그런 신앙은 천만금을 가져와도 신도 부담스러워 할 신앙이다 가장 저급한 믿음이다

천리를 듣고 깨닫고 보니 전생에 저지르고 조상때 저지른 원죄적인 인연에 대해 반성 참회하는 실천을 거듭하여 탕감받으려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창조주God의 뜻을 남에게 전하고 창조주God가 기뻐하는 리를 쌓아 미래목적을 향해 적덕하는 신앙이라면 중급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 나아가 차츰차츰 성인하여 창조주God가 바라는 바 이끌어 주시고 살려주시는 대은을 창조목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그 성업에 동참하여 세계인류구제의 사명감으로 창조주God의 어버이마음을 체득하여 남을 구제하려 참자녀로서의 사명을 다하려 교회를 이룩하려 노력하는 신앙이라면 최상급의 가치를 지닌다고 보면 되겠다

아무리 가치가 높아도 마음의 바탕이 잘못 형성되어 있다면 구제의 방해가 되기 싶다 특히 교회에서 태어나 교회에서 자라게 되면 신앙이 깊어질 것 같아도 오히려 나태해지게 된다 교회장의 아들이라도 전도포교라는 제일의 명제를 잊고 신자들이 가져다 주는 돈으로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생각이라면 도태대상 제 1호가 아닐까

교회의 후계자는 물론이거니와 어떤 경우의 위치에 있는 사람도 자신이 이룩하는 교회가 있어야 한다 작든 크든 교회를 이룩하려는 신앙이 아니고서는 그 생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후계자외에는 모두가 초대이다 초대는 교회를 내가 이뤄야겠다는 심정이 아니고서는 안된다 초대는 자기의 후손이 만대에까지 고맙게 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위치를 못 깨닫게 되면 후계자의 위치를 넘보게 되고 도와주고 세워주어야할 후계의 芯을 쓰러뜨리고 시기하게 된다 부모가 보는 자식은 어버이마음으로 보기에 모두 다 성공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형제의 理는 대립의 인연을 지니기 때문에 서로보완하고 도와가는 것 같아도 궁극적인 이익에 부딪히면 밟고 일어서려고 한다

후계자가 될 장남이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고 치자 부모의 입장에서는 애통하기 짝이 없는 사정임에도 형제의 입장에서는 혹시 내가 후계자가 되지 않을까 또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에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이 형제의 理이다 작든 크든 교회를 이룩하여 나의 후손을 책임지고 고맙게 만들려고 노력하려는 마음가짐이 아니고서는 진정한 큰 구제 최상급의 가치를 지닌 구제는 없다

남을 도우면 내가 도움받는 형체의 모습 즉 교회라는 심을 배경으로 끊어짐이 없이 리가 이어져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일생애의 마음을 다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공동체가 교회라는 곳이다 교회라는 지바의 출장소의 리를 지닌 구제장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교리의 생활화와 각지 각처의 모범의 본보기가 모본이라는 초유의 진실을 나르기는 어렵다고 본다 오야사마가 50년 간 목숨을 걸고 가르쳐주신 근행과 세상사람들에게 神God을 증거시키려는 수훈을 전하는 교회라는 형체는 지금의 시순에 반드시 필요한 구제의 집점이 아닐 수 없다
아! 오야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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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행은 온 세상을 구제하는 길 벙어리도 말하게 하리라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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