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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극락
 월일은 없던 인간 없던 세계를 창조한 어버이인 거야 16-53 교조 120년제 기념 마크
 

 

 

터전의 이 흙을 파내어서는
장소를 바꿔서 놓을 뿐이라 十一-8

Eighth, Digging up the earth of the Residence,
You just carry it from one place to another
오늘이때 까지는 세상사람들
신의 뜻 모름이 유감이로다 十一-9

Ninth, Until this time, no one has ever understood MY heart;
How regretful it is!
올해에는 거름안해도
충분히 추수를 거둬들인다
참말 든든하고도 감사하도다 十一-10

finally, This year, without fertilizing,
We reaped a sufficient harvest.
Oh, how delighted we are! How thankful we are!
 

 내가 무슨 대단한 理라도 지닌 사람마냥 [내가 포교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 귀중한 理를 남들에게 맡기고만 있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포교에 나섰다 솔직히 뭔가를 알고 나선 것은 아니다 아는 것이 있다면 내가 갈길은 누가 뭐래도 이 길이라는 사명의식과 목적의식이었다 아무런 대책이나 포교의 방법등은 없었다 포교나가서 고생하면 理가 붙을 것인즉 理가 있으면 언젠가는 되어져 올 것이라는 믿음과 으뜸인 理라는 천하제일의 진리를 가지고 팔고 있고 수훈이라는 전천후 무기를 지니고 있다는 확신 같은게 있어 걱정이라고는 추호도 없었다

누가 포교하면 좋다거나 포교할 사람이라며 부추긴 사람도 없다 다만 강습을 받으며 이야기를 들으며 꾸역꾸역 눈물이 나면서 불끈 쥔 두 주먹에서 나도 모르게 작정이 된 것이다 1980년 4월 13일 결혼하여 83년 4월 20일 천리교 강습에 갔으니 아직 신혼인 셈이다 그래도 집에 한번 가보고 싶다거나 졸업하고 사회를 나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집사람과 어머니는 강습받고 나면 정신차려 열심히 살줄 알았지 저래 미쳐나갈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사연이었다 강습받고 집으로 간 것이 아니라 그냥 그곳에 있고싶기도 하고 평생 神의 일이나 보면서 살아야지 희망없는 사회생활 이젠 진저리가 난다는 심정이었으니 하마나 강습받고 집에 돌아올줄 알았는데 포교라며 훌쩍 떠나 버렸으니 무책임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많은 곳에 가서 마이크로 한참 떠들다가 또 옮겨서 떠드는데 이 정도 이야기하면 알아 듣겠지 싶은 착각이 없는 것 또한 아니었다 처음에는 토굴(하수구 용 큰 토관)에서 며칠 잤다 간단하구나 포교가 굳이 셋방 얻어 나가는 것 보다 이게 편하지 않겠나 싶었다 이왕 떨어질바엔 제일 밑바닥에 떨어져야지 물도 떨어지면 솟구치는 법 밑으로 밑으로 마음이 낮아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셨지 않은가 그래도 이것보다는 작아도 내집이 낫다고 개인용 텐트를 마련하여 동네 가운데 쳐 놓고보니 수상하지 않았겠는가 우선 히노끼싱 정신을 발휘했다 빗자루를 사다가 동네를 다 쓸다싶이 청소를 했다

그 때는 생활비의 거의 전부가 빗자루 사는 돈이다 지출은 있을 턱이 없다 100리 길이 넘어도 걸어다니면 되고 누가 빨리 안한다고 잔소리 하는 것도 아니것다 돈 벌어오라고 닥달하는 것도 아니것다 오로지 게으름 피우지 않고 창조주 어버이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 神이 알아서 보고 계시면서 수호를 베푸는 거라며 이렇게 좋은 생활방식을 두고 오로지 돈 돈 돈에 미쳐서 날뛰는 세상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었다 포교 나올 때 돈을 벌어야 애들하고 먹고 살 게 아니냐며 허리춤을 붙든 아내와 어머니께 돈이 소중한게 아니라며 그것보다 엄청 귀한 보물이 있다며 떠나왔는데 돈이 필요없다는 말이 두고두고 오금이 걸렸다 저놈은 돈도 필요없는 넘이라며
[계집자식 우째 먹여살리끼고]하며 한탄하신 우리 어머니 -

내가 포교해 가지고 돈벌어다 식구들 먹여 살릴리는 만무하고 저놈 정신좀 들 게 집을 나가야겠다며 가출하신 어머니의 심정은 아랑곳 않고 청과시장에 가서 배추 씨레기 줏어다가 민물횟집에서 버려놓은 붕어대가리를 개준다고 얻어다가 소금넣고 삶아 먹었다 얼마나 맛있는 줄 아마 모르리라 신혼초에 자존심 상하게 아무것도 일할꺼리를 못 만들어 야꼬 죽어있을 때 밥알이 입안에 빙빙 돌 그 때를 생각하니 이게 살아있는 극락이라는 느낌이었다

매일 나가서 마이크로 떠들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포교라는 것을 실습(?)하는데 그 소문이 퍼졌든지 라면 한박스와 담요한 장이 텐트집에 와 있었다 아무리 작아도 간판은 크야지 간판도 없이 우째 천리교를 알리것나 싶어 집에 비해 대문짝만하게 [최후의 종교 天理敎]라는 간판을 써 붙이고는 또 들고다니는 간판(?)까지 해달고는 천리교 핫삐를 입고 전도를 다닌 것이 효험을 본 것이다 누가 천리교 하시는 분이 처음 단독포교가 얼마나 힘드는가 들은 소리도 있으니까 개구멍(?)같은 곳에 와 보고는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냄비하나 숟가락 하나만 당그라니 있으니 무얼먹고 사는가 싶어 적선하신 거다

내가 텐트집을 지은 곳은 어느 예식장 주차 공간의 귀퉁이 인데 담배꽁초를 줏어다 피우고 아침청소를 부지런히 하고 박자목소리를 내며 근행도 열심히 보니까 정신이 영 간 것 같지는 않는데 저렇게 사는 것을 보니 어디 취직이라도 시키면 되겠다 싶었든지 내가 잘아는 사람이 천리교 다니는 배사장이 있는데 그곳에 취직하면 월수입이 얼마나 될 것인데 하고 제안을 했다 아저씨 말씀은 고맙지만 한달에 5백을 주어도 취직할 사람 아닙니다고 했다

사실 500억이라고 이야기하려다가 정성들여 이야기하는 사람 놀랠까봐 깍아서 이야기 한 거다 무슨 뽀족한 수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러나 이 진리는 돈으로는 환산불가능한 진리인데 숫자로 나열할 수 있는 그런 재물에 눈이 어둡다면 아예 돈벌로 나가는 것이 훨씬 나을 일이다 나도 단 두달만에 거금 600만원도 벌어 보았다 노점에서 밤장사하여 2달만에 그런 돈을 벌기는 아마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天理敎 강습을 가야할낀데 조금 벌어놓은 것 다 까먹고 300만원짜리 전세방도 다 날라가고 빚만 몇백만원 지고 있을 무렵이라 창조주의 오묘한 섭리가 아니고서는 어중갭이로 놀고 있으며 죽기로 방황하고 있었는데 두달만에 노점에서 밤(栗)장사하여 600만원 벌었다면 아마 안 믿어질지도 모르지만 사실이 그랬고 불가능할 일을 神이 나를 이끌어 쓰시려고 최소한의 가정 입장을 덜어 주시려 하신 것이라 믿고 있다

물도 떨어지면 솟구친다는 말씀이 있다 가난에 빠져라 가난에 빠지지 않으면 어려운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없다며 어중간히 떨어질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가난하려해도 떨어질 수 없는 상황까지 떨어졌을 때 神이 받쳐 주신다는 말씀하나를 믿고 이왕 떨어질 바에야 밑에까지 떨어지자는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떠나온 것이다 그러나 알고보니 배수진을 친 것은 아니었다 가족은 따로 두고 어머니까지 가출(?)한 마당에 어째도 함께 밑바닥에 떨어져야 하는데 이건 숫제 허울만 극빈이지 실제를 은닉해 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때도 있었다

개구리도 멀리 뛰려면 움추리지 않느냐 세계구제의 대명제 앞에 한갖 물질세계에 마음이 빼앗겨서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 나는 이 움막집이 자랑스럽다 남들은 거지 집이라 할지 몰라도 창조주God의 목표를 모시고 태초를 이야기하는 못자리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내가 펴낸 몇권의 책 표지에는 우리 움막집이 자랑스럽게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아이들 담임한테 혜존이라도 하려고 하니 기겁이다 그래도 담임께 보냈더니 학부모가 책을 써서 보내왔다며 자랑을 한 모양인데 친구들이 [그동네 그런 집 없더마는 어데?쯤 있노]하고 물어 창피해서 죽겠다는 거다

학교에서 가정 환경조사같은 종이가 오면 우린 적고 동구라미 칠곳이 없다 남의 빈 땅에 움막집을 지어놓고 있는데 자가도 아니고 전세도 아니거니와 특히 아파트도 아니고 주택도 아니다 옛날같이 TV라도 0표를 치라고 하면 되지만 근래에는 그런 것도 없으니 적을 수도 안적을 수도 없어 움막집 표지가 나온 책이라도 보면 선생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까싶어 의도적으로 보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동네친구들은 줄줄이 데리고 오면서 학교친구는 아직 한번도 못데리고 온 것 같아 실망(?)이다 아마 아버지가 오야사마 믿으라며 박자목 두드리는 것이 못 미더운지도 모른다 어릴적에는 전도가자고 하면 전도도 자주 데리고 다녔는데 조금 머리가 굵어지고나니까 그것도 어렵다 그래도 아버지 하는 일을 존경한다고 하니까 다행이지만 말이다

이젠 너와 내가 함께 짓는 집이 필요하다 며칠 안있으면 휴학계를 제출하고 군입대를 하려는 니 마음 잘 안다 어려움을 덜어줄려고 고심끝에 결정한 일 그래 어서 잘 다녀 오너라 애비가 틈틈이 만든 홈피를 보고 수고많았다며 [누가 이 홈피를 전부 읽어줄 사람이 있어야 아빠가 보람일 텐데- ] 그래 아무도 안읽어도 어쩔 수는 없다 그러나 아빠혼자 지어놓은 집은 깊은 감사를 모르겠지만 너와 내가 함께 짓는 집은 만대까지 그 리가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어째 같이 짓자고 한적이 있었는데 변명같이 안듣고 좋게 들어주어 기분은 참 좋다 이제 이곳에 작지만 뿌려진 진실이 싹트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올해에는 거름 안해도 충분히 추수를 거둬들인다 참말 든든하고도 감사하도다]라고 하신 노래가 나를 두고 하신 것만 같기도 하다 참말 든든하고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 오야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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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행은 온 세상을 구제하는 길 벙어리도 말하게 하리라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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