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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들고 수확량이 정해지고
 월일은 없던 인간 없던 세계를 창조한 어버이인 거야 16-53 교조 120년제 기념 마크

 

 

 

온 세상은 풍년이리라
Yattsu, Yamato wa honen ya.
Eighth, Yamato will be blessed ith a rich harvest.
여기까지 따라오라
Kokonotsu, Koko made tsuite koi.
Ninth, Now come hither and follow Me!
수확량이 정하여졌다
Todo, Torime ga sadamarita.
Tenth, Then the full harvest will become fixed. 

 말씀을 문자화 해 놓은 글이 오후데사키이다 그리고 신악가이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읽거나 듣는다고 하여 신God의 뜻을 알 수 있을까 당신이 여기까지 읽고 듣고 왔으나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이 길은 이야기를 듣고 알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성인에 따라 보여오는 길이다 진실로서 당겨보아 마음으로 혼으로 느껴야만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길이 이 길의 신앙이다 당신이 텐리오비전을 지식으로 납득한 것과 신앙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 길의 신앙은 실천이다 神God을 영접하고 신전에 꿇어 앉아 굴복한 자세로 잘못을 참회하면서 길은 시작된다 그리고 나의 사소한 이야기를 전부 털어놓아야 된다 자신이 지나온 과거에 대해 2시간이던 10시간이든 오늘 못하면 쉬엄쉬엄 생각나는데로 과거를 털어놓고 인간관계와 가족의 문제점 등 모두를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그 때부터 마음이 후련해지면서 진리가 종이나 스폰지에 물이 스며들 듯 혼으로 스며 들게 된다 만약 그러한 과정을 밟지 않고 육도벼슬을 해도 신앙은 커지지 않는다 그러한 과정을 밟는 가운데 인도자와 내가 하나됨을 느끼고 신뢰감을 갖게 된다 인도자와의 뭔가모를 간격이 있다는 것은 그 속에 불만과 불평이 자리잡는 원인이 된다 신앙은 감사와 감격의 연속이다 어떤 고난도 감사와 감격으로 승화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은 神God과의 대화와 통하는 마음만이 가능하다 인도자와 통하지 않고 神God과 통하는 길이 없음을 이 길에서 가르치는 하나의 초점이다 만약 당신이 나를 통해 뿌리깊은 하소연을 나눈다면 내가 당신의 인도자가 되는 것이며 당신이 다른 사람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이 길로 인도한다면 당신이 그 사람의 인도자가 된다 그러나 당신이 그 사람을 인도했을지라도 당신이 소정의 교육을 받지 않고 구제의 길에 교회를 이룩하려는 신앙의 목표가 정해지지 않았을 때는 그 사람의 소속은 곧 당신의 소속과 같아진다 그리고 그 사람은 비록 당신으로부터 인도를 받았을지라도 그 사람이 앞서가는 자가 되고 당신이 뒤 따라오는 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이 길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보통의 인연이 아닐진데 그 깊은 뜻을 모르고 잠시 머뭇거린 사이에 아무리 따라잡으려 애를 써도 뒤쳐지는 경우를 주위에서 종종 보기도하고 듣기도 한다

 길을 가면서 부족을 사든지 만족함을 갖든지 그건 그 사람의 인연과 덕의 소치이며 자유이다 그러나 길에 뒤쳐지므로 길을 포기하는 경우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당신이 말씀을 소중하게 받아들여 가르쳐주는대로 천천히 연한에 따라가면 어느 듯 지금은 상상도 되지 않는 지도자가 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건 내가 지도자가 되려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도 혼의 덕이 쌓여 그렇게 될수밖에 없다 되고 안되고는 덕의 문제이다 덕이 있으면 저절로 되어져오는 것이 천리의 세계인 반면 덕이 없으면 아무리 애를 태우고 빌고 생난리를 쳐도 되어지지가 않는다 [되는 것도 인연 안되는 것도 인연 아무리 해 보려고 애를 써도 되지 않는다]는 말씀같이 억지로 만들려고 하면 더 사달이 난다 되어져오는 理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되어져오는 그 모습을 보고 자기 값을 발견하여 그 속을 즐기는 것이 신앙이다 덕이 없다고 깨닫는다면 덕을 만드는 법을 배우고 적덕을 그대로 꾸준히 실천하면 되는 것이니까 덕없다고 한탄말고 늦기전에 德 만들면 된다 어려운 것 하나도 없다 다만 조급한 마음에 천하제일의 길에 들어왔다고 하루빨리 본전 찾을려는 허욕이라면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억지욕심 억센 고집은 망하는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God을 안다거나 신앙이 깊은 것은 학문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혼의 문제이다 혼의 문제는 본능으로 알 게 된다 학문이 깊고 연구를 많이 한다고 하여 신앙이 깊은 것은 결코 아니다 신앙이 깊다 엷다고 하는 것은 그 믿음이 순수하고 오래가고 독실함을 의미한다 신앙이 깊으면 깊은만큼 쌓인 덕이 깊기 때문에 부족불만이나 티끌이 보이지 않게 된다 신앙이 있다 없다함은 감사와 감격을 즐기느냐 부족과 불평이냐에 따라 구분된다

학문으로 보이는 것이 종교신앙이라면 벌써 절단나고 말았으리라 신앙은 학문이나 인간지혜로서는 도저히 제거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역사속의 위정자들은 굳은 신앙으로 뭉쳐진 신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위선이나 아첨 혹은 권력을 남용하기도 한 사례는 숱하다  그렇다면 여기까지란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정당화 시킨다 지금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연한이 지나고 신앙이 성숙해지면 지금의 생각 또한 다듬어지고 어렸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이 길의 신앙은 끝이 없다 뿌리를 파면 팔수록 샘솟듯 리가 솟는 최후의 버전이다

아마 다른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은 많이 느낄 것이다 의문의 꼬리가 벽에 부딪혀 답답함을 느꼈으리라 가르침이 진리의 책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구제받을 수 있는 교리가 결여되어있기 때문에 천국이나 극락을 피안에서 찾으므로써 진리의 완성을 꾀하려 하고 있지만 혼에 꽉 찰 수가 없는 반쪽 진리가 되고 만 것이다 하여 생겨나는 것이 진리와는 거리가 먼  피안의 천국이나 氣나 요가나 무슨 술수같은게 종교라는 가면을 쓰고 혹세무민하게 되는 것도 모두가 이러한 이치이다 이제 그러한 술도 모두가 섭리의 일환일 뿐이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진리의 화룡점정에 이르는 과정의 길에 있는 사람들이 그 곳이 목적지에 왔다는 착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종착역이라든지 신앙을 다 이해하는 줄 알고 있는 그곳이 여기까지가 아님을 부언하고자 하는 것이다

입신한 그날의 심정에서 아! 다행이다 여기까지 오게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곧 햇병아리임을 몇 년이 지나고 나면 깨닫게 되고 숱한 마디를 넘기면 넘길수록 그런 생각이 깊어진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서 아! 여기까지 무사히 따라왔구나 참말 든든하고도 감사하도다고 감격하는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 만약 내가 出直의 理와 貸物借物의 理를 깨닫지 않았다면 이때 어떤 생각을 하며 이 고귀한 죽음을 맞이 할까 - 참으로 다행이다고 할 것이다

이 길의 신앙은 내가 죽을 때까지 믿는 것으로 안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갈 수 있는 파장을 형성해 놓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며 그것이 자손만대로 이어져야 안심할 수 있겠는데 후손이 즐거운 마음으로 신앙을 할 수 있도록 이정도면 여기까지라면 안심이다고 할만큼의 성인이 되어야 한다

이 길의 신앙은 생명보다 귀중한 理를 지니고 있다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기껏 육체적인 죽음이 있기전을 말하고 있는데 참생명은 영혼의 영속과 영생으로 영원히 살아가야할 끝없는 여행이다 그런 고귀한 신앙의 생명이 금생이라는 때에 머무는 신앙이라면 별 수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지금 생명을 던져 영원한 생명을 맞이할 채비가 곧 이 길의 신앙이다 병을 도움받기 위해 사정이 해결되기 위해 사방이 다 막혀 괴로워할 때 이 길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정해 신앙을 결심하게 되지만 그 결심이 영원하다고는 절대 장담할 수 없는 시험같은 마디가 숱하게 따르게 마련인데 어떻든 신을 의지하여 괴로운 일이든 좋은 일이든 인도자와 상의하고 신한줄기 정신에 입각하게 되면 차츰 성인의 길로 이를 수 있겠지만 신앙의 길에 들어서도 자신의 생각대로 길을 가게되면 앞뒤가 막혀 진퇴양난의 길에서 헤메이게 되는 경우를 종종보게 되는데 이런 신앙은 감사와 감격은 없어지고 불평과 불만 부족으로 神God을 원망하고 몸 담은 종교를 비난하게 되며 인도자를 헐뜯게 되는데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종교신앙을 선택하여 믿으면 믿고 안믿으면 그만이지 몸담고 있으면서 간격이 생긴다는 것은 다하지 않고 나르지 않기 때문에 길에 뒤쳐져 생기는 낙오되는 모습인 것이다

다하며 고생한 理는 몸에 붙게 된다 다하지 않고 헐뜯게 되면 길은 막히게 된다 여기까지란 길이 막혀 앞으로도 옆으로도 갈 수 없는 길이 아니다 앞으로 얼마라도 걸을 수 있는 덕이 쌓여 있음을 깨닫고 여기까지 데려와 주신 은혜가 고마워 주체할 수 없을 때 - 여기까지 따라왔다며 감사 감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 정도 성인하게 되면 어린아이와 같이 투정하고 바라기만 하던 어린 나를 이렇게 成人의 길로 인도해 주신 은혜가 고맙기 이를데 없을 뿐 아니라 그 은혜를 자손만대를 두고 갚아도 모자란다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실 자손만대를 다해 갚아도 모자라는 엄청난 길이다 이 험한 길을 안심하고 자녀들에게 맡겨두고 떠나기는 정말 불확실하다 그러나 오야사마호를 태워놓고 나면 아! 이젠 안심이다 저들이 오야사마의 가르침을 따르는 한 이제 안심이다는 확신을 갖게되는 천하에 둘도없는 절대의 믿음인데 어찌 그 은혜가 크지 않으리오 [여기까지 따라오라 수확량이 정하여졌다]고 하시지 않는가 말대만대까지 확실히 구제를 보장받을 수 있는 보증서를 받을 때까지 구제한줄기 신한줄기 정신으로 의지하여 따라가면 열리는 길이리라 여기까지 따라오라는 말은 한발 앞서서 수호를 베푸시며 이끌어 주시는 영원한 격려와 인도의 정이 담긴 어버이마음이리라 아! 오야사마

 
 이 근행은 온 세상을 구제하는 길 벙어리도 말하게 하리라 4-91
Changjomoonhwa and  Tenrikyochurch-Chunma of Chunria, a-Oyasama  hp016-9640-0999 tenri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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