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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리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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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대학 - 나는 중학교를 턱걸이로 나왔다 중학교 3학년 때 - 노부모와 우리 삼형제(형은 작고 동생은 장애인 2급) 먹여 살리려고 논 340평으로는 풀칠도 하기 어려웠던 그 때 27세때 혼자되시어 고기 다라이를 이고 집집마다 개짖게 하신 어머니는 꺼내기 어려운 듯 말씀하셨다

[너거 둘중(동생과) 하나만  공부시킬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고는 장애인 동생 중학교는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학교에 나가는 둥 마는 둥 그래도 졸업장은 받은 것같다 우째 돈을 많이 벌어 돈 선풍기로 돈복수나 해 보자고 했으나 이끌어 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기껏해야 요코공장에서, 잡화점의 배달머슴, 노가다 잡부, 노점상이 내 人生의 이력서의 전부다

그 어머니를 자갈치 시장 노점바닥에 쳐넣(?)고 영원한 幸福을 찾는다며 돈이 필요없다고 떠난, 그래도 쓸만한(?) 자식 하나 있는거 아직 움막 신세조차 못면한 것을 보시고는 한숨이시다

팔순이 다 되시고 몸이 불편한데도 장애인인 동생의 총각 딱지를 못떼주어 안타까워하는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이 불효자는 울 자격조차 없는 - 천하에 불효한 죄인이다 그래도 위안이 된다면 대친이신 창조주God의 심부름꾼으로 만인에 효자가 되어 금생의 잘못을 대속받아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업까지 탕감해 드리고 싶다 아! 오야사마


 이 근행은 온 세상을 구제하는 길 벙어리도 말하게 하리라 4-91
교조 120년제 기념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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