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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대전 EXPO
종합자유게시판  

            

1) 대전 EXPO 93일간은 나의 독무대였다 14백만 관람객이 오로지 신의 노래 신의 음률을 듣기위해 세계의 이목집중과 함께 엑스포장으로 몰려들었다 나는 그곳에 들려 청아한 박자목소리를 듣고 신의 춤 신의 음률을 들은 자를 단순한 관람객이라 생각지 않는다 신이 보낸 포교자들이다

그들의 뇌리 깊숙한 곳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그림과 음악이 녹음되고 색인되었으리라 그들은 돌아가면 이상한 포교자를 얘기하리라 그게 그들도 포교자인기라 이슬람의 터빈을 쓴 사람을 한번도 보지 않았는데도 우린 그것이 어떤 것인줄 TV를 통해 잘 알고 있지 않는가

2) 수만명의 관중이 운집하여 기다리고 있다 정문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입장대기를 위해 줄을 서 있다 무료하기 짝이 없으리라 그런 그들에게 교복을 입고 박자목을 두드리며 청아하게 부르는 신악가 소리는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처럼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구경거리(?)가 아니겠는가

오전 7시(입장하려 대기하고 있는 그들에게도)부터 밤 11시(마감하면 우루루 몰려나오는 그들을 놓칠 수 없어)까지 쉴새없이 박자목을 두드리며 때론 부채춤으로 공연(?)했다 점심은 우유통에 미숫가루를 담아와서 물을 넣어 흔들어 먹으면 되는 간단한 식사였다 자전거와 현수막은 정문앞에 세워 걸어둔 채로 앞뒤로 [천리왕님이시여! 태초를 아는가?]하고 써 붙인 천리교 아저씨를 그들은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3) 엑스포장의 경비병력만도 3만명에 달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그들이 나를 그냥 둘리가 만무하다 다른 종교도 아니고 처음보는 그런 이상한 종교가 이색복장을 하고 수천억의 돈을 들여 마련한 세기의 무대를 휘집고 다니는 걸 그냥 두겠는가

또 그런다고 호락호락 하겠는가 하루에도 여러 수십번의 검문(?)같은 것이 있었다 중앙상황실장을 만났다 임무를 이야기했다 좋다고 했다 바로셀로나에서처럼 전 경비관계자들에게 비상조치를 취하라고 했다 그렇게 한다고 했다 그러나 워낙 많은 단체(군인, 경찰, 정보, 회사등)라 그게 쉽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연락은 취할테니 안심하라고는 했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상황실로 연락하면 ok! 하기로 했다

4) 하루에 수십번도 넘게 천리왕님의 신명이 무전기를 타고 상황실에 전달되었다 [여기는 ***인데 천리왕님이 이상한 복장을 입고 무슨 운동을 하는데 어쩔까요?] 그러면 괜찮다는 사인이 오게 되는데 방대한 장소에다 하도많은 그들이 교대로 근무할 때마다 당하는 일이다 졸지에 천리왕님(?)이 되기도 한다

5) 서부 경찰서장이라는 사람 혼쭐이 났다 아니꼬왔는지 우째도 연행해 오라고 했는지 상황실도 안통하고 하여 따라갔는데 그 서장이 따짜고짜 이유불문코 엑스포장 안에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교복을 벗고 부채도 들지 말고 다니는 것은 자유라고 했다 별명이 부채도사 동방불패라 불릴무렵이었다 내가 그 양반 옷은 벗길 수 있어도 지가 무슨 수로 창조주가 입혀주신 위대한 이 옷을 벗길 재간이 있단말인가 그날 논리에 궁한 그가 잘못됐다고 빌고 말았는데 -

6) 처음 보름간 정도는 그런 저런 실랑이도 많았으나 보름이 지나고부터는 차츰 그 진실을 인정(?)받았음인지 출입할 때도 검사도 하지 않을 뿐아니라 나와 함께 들어가는 우리 신자분들도 아예 그냥 통과되었다 줄을 서지 않아도 특수임무자들이 출입하는 곳으로 드나들었다 장사나 계속 근무하는 분들이 먼저 목례를 하기도 하고 말을 건네기도 하며 때론 음료수같은 걸 주며 대화를 걸어왔다

7) 유명 인기관이나 유명 국제관 앞에는 하루에 한번정도 불시 공연(?)이 있다 처음에는 별 이상한 미친놈도 있다싶어서인지 밀쳐내기도 했으나 어느날부터 내가 빠진날은 왜 어제는 오지 않았느냐고 물으며 아예 공연장소를 관중이 뺑 둘러선 원의 중심축이자 입구에서 하라고 한다

내가 공연하는 곳이 바로 나의 무대인데 그들이 하라고 하여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듯 신뢰가 쌓였다는 말이다 하루종일 기다려야 볼 수 있는 그런 무료한 곳에 주최측으로서도 나를 유치(?)할만 하지 않겠는가 내가 가지 않는 곳은 그만큼 인기가 없다는 것이니 말이다

8) 기독교를 열렬히 신앙한다는 어느 청년은 존경심을 표시하며 교리에 흠뻑 젖어들기도 하였는데 나의 손을 그의 머리에 좀 얹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꺼이 수훈을 받았다

머리에 전기가 오는 것 같았다는 그는 오징어도 팔고 비오면 우산도 파는 괜찮은 청년이었다 손수레에 원적외선 닭구이를 하든 그 아저씨는 어데 계실까 떨어진 살점에다 소주한잔씩 얻어먹었는데 촐촐하던 차에 얼마나 맛있었는지 -

9) 정말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땀속에서 살았다 敎服을 입고 어디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교복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미숫가루를 흔들어 마시고는 하루종일 이곳저곳을 미친 듯이 다녔다 숙소는 자전거로 약 20분 거리에 얻었다 숙소에는 쌀이 있었지만 주로 라면으로 때웠다 93일간 월일방송국의 특파원으로 파견되었다는 마음이었다

땀에 쩌린 교복의 수는 삭아내리고 이제 그 흔적만 남은 교복이 있다 아마 후세의 天馬인들은 그 敎服을 초대의 혼이 깃들었다고 하며 오늘이 있게된 가치를 그 교복에다 부여할지도 모르겠다

10) 외롭지 않았다 내가 가장 존경하던 신앙의 선인이신 저 유명한[回生의 冒險者 崔宰漢]선생이 오매불망하던 후계자 최효석군과 天馬의 후계자가 공연에 참여했고 멀리 b시에서 교신자들이 소장의 고생을 나누기 위해 특별 찬조출연(?)해 주었으며 당시 교회본부 해외부장이신 이브리선생과 청장님이 관광겸 격려차 방문해 주셨으나 만나지는 못하고 입구에 걸어둔 현수막과 자전거를 보셨다며 아쉬워 하시는 걸 들었다

그리고 콧수염의 사나이 중의 사나이 여자 여자 여자의 명창 吉川(요시카와)선생은 당시 외국인으로서 방송에 자주 출연한 유명인사였다 엑스포 외국인 무대의 출연자였는데 나에게 특별초청이 있어 방청을 하게 되기도 했다 물론 교복을 입은 모습이 TV에 나왔었다

11) 엑스포 93일 간 그 무덥던 여름임에도 월일방송국의 특파원을 국제행사에 파견해 놓으시고 격려를 보내오셨다 다른 어느 해보다도 구름이 많이 끼고 시원한 여름을 선물하시는 것이라 깨달았다 그것은 삼풍참사현장의 날씨 때도 그렇게 느꼈었다 14005808명에게 전도했다 연 인원으로 계산하면 5000만명은 넘었으리라


이 근행은 온 세상을 구제하는 길 벙어리도 말하게 하리라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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