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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의 황영조선수 우승하던 날/태극기 휘날린 바로셀로나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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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2바로셀로나 올림픽은 한국의 무대였으며 감격의 무대였다 마라토너 황영조 선수의 우승은 韓國의 위상을 더높였다 나는 뉴스에 별 관심이 없는지라 황영조가 누군지는 잘 몰랐으나 황영조가 우승하기를 기원했기에 우승하리라 믿었었다

그 믿음은 경기가 있기전날에 확신했다 걱정이 태산같은 섭씨 37~8도의 무더운 날씨에 한국선수로는 무리이다 비라도 한줄기 와 주었으면 하고 기도했는데 그날밤 억수같은 소나기가 쏟아졌다  

지중해 연안의 건기에 치뤄지는 올림픽이라 비를 구경하기는 어려운 때였다 얼마나 큰 환희에 빠졌는지 모른다 [황영조가 우승이다]고 크게 외치는 걸 함께 야영하던 독일 응원단들이 듣고 의아해 했다 다음날 결승점에서 황영조를 기다리자고 제의했으나 TV를 통해서 봐야겠다는 그들의 고집을 꺽지 못하고 혼자서 블루라인을 따라 몬주익 주경기장의 언덕밑에서 그를 기다렸다

내가 하도 흥분되어 응원하는 걸 들은 현지인들은 한국이 두 번째(세컨) 쯤 오고 있다는 라디오 중계를 귀띰해 주었으나 아니다 우노(첫번째)를 외쳤다 [코리아가 우노다!]를 얼마나 크게 태극기를 흔들며 외쳤는지 모른다 그런데 황영조가 태극마크도 선명한 우리의 황영조가 에스코드를 받으며 뛰어오는데 나도 함께 불루라인 밖에서 뛰었다 200m 정도의 거리를 힘차게 뛰었으나 그는 나보다 훨씬 빨랐었다

2) 몬주익 언덕에 위치한 주경기장 아래 - 응원하러온 사람들은 더 이상 달려갈 수 없는 지점에는 독일에서 왔다는 한국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반드시 황영조가 우승할테니 제가 여기까지 태극기를 들고 황영조와 함께 뛰어 오겠습니다]하고 약속했던 장소였다 그 분이 보내온 엽서가 먼저 한국에 와 있었다 아마 위의 사진에 있는 저 엽서가 없다면 나의 이런 말을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선생을 만나게 된 것은 매우 감격적이었습니다 - 특히 * 선생의 그 뜨거운 조국애와 마라톤 재패를 염원하는 외침 그리고 황영조 우승자와 함께 뛰신 그 응원은 제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애국심이었습니다 선생과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이 응원한 마지막 코스의 Korea! Korea!의 외침은 바로 대한의 합창이었지요 그날 밤 12시 경 출발하여 프랑크프루트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 부총영사 *** 드림] 

그날 밤 몬주익은 한국의 밤이었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kbs에서 인터뷰를 한 것이 김포공항에 내리니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3) 일행이 묵은 숙소는 알바트로 야영장이었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명소 알바트로는 유럽에서도 그 명성이 첫째로 꼽힌다고 했다 다시 찾고 싶은 곳 알바트로 - 은빛 모래와 바다 작렬하는 태양과 끝없이 긴 소나무 숲 - 전도를 마친다고 사복으로 갈아입지는 않는다 교복을 입은채로 알바트로에 도착하면 각국의 젊은이들이 밤이 늦은데도 기다려주고 있다

맥주와 스파케티 등을 가져와 건배를 제의하는 건 거의 매일 반복되었다 이누이 후꾸다씨 등의 敎會本部 관계자도 만났다 교복을 입고 박자목을 두드리며 흥겹게 神의 노래 신악가를 부르며 神의 춤을 알바트로에서 공연(?)한 것이 인연이었다 이태리 독일 프랑스 스페인의 그 친구들이 억지로 권해 끌려(?)갔던 나이트는 거품속의 천국(?)이었었다 어쨌든 다시 가고 싶은 곳이었다

4) 독일 교민들 - 그들은 한국선수들을 응원하러 온 최정식 단장이하 교민들이었다 황영조와 함께 뛰고 그날 밤 오직 하나밖에 없었던 몬주익의 태극기는 역사의 증인이었다 황영조가 태극기가 있었다면 트랙을 돌며 태극기를 흔들었으리라고 하지 않았든가 만약 주경기장안에 내가 있었다면 뛰어내려 함께 뛰었으리라 그 태극기를 최정식단장께 선물했다

[당신들이 돌아가면서 태극기를 흔들며 고속도로를 질주하라 몬주익의 감격을 독일까지 가져가라 그리고 재독일 대한체육회의 사무실에 이 영광스러운 태극기를 보관하라 20년 후 유럽에서 올림픽이 열리리라 그때 한국에서 새 태극기를 가져와서 이 태극기와 바꾸자]고 제의했다 아마 20년 후 즉 2012년 올림픽은 유럽에서 열리겠지 오야사마가 나의 말을 들으신 이상 그렇게 수호를 베풀어 주실거라는 확신이 섰다

5) 당시 107년간 짓고 있다는 바로셀로나의 ?성당이다 얼마나 크고 장대하기에 그런가 싶어 들어가서 아르헨티나의 신양기선생을 통해 물어보았더니 예산이 한꺼번에 많이 책정되지 않아서라고 했다 한국같으면 넉넉잡고 4,5년이면 완공될 수 있지 않았을까 콜론항 콜롬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하러 떠난 곳을 배경으로 -

6) 아리모또 교수 부인의 안내로 마드리스의 인근 도시 똘레도에 관광을 갔다 경주와 같은 문화의 도시인데 나는 인간의 유적보다는 자연적인 경관을 좋아하는 성품인지라 그렇게 달갑지는 않았으나 군데군데 안내하는 그분의 정성에 감동했다 사진은 필자의 구두끈이 풀어진 것을고쳐 메어 주는 모습인데 부인의 말에 매우 놀랐다

[당신에게 이런 봉사를 하는 것은 나의 영광이다 당신은 신의 훌륭한 사자]라고 극찬했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 집사람도 하기 어려운 영광스러운 봉사(?)를 받았는데 그걸 사진에 담았었네요 -

7) 아리모토 교수의 아파트 옆의 공동 휴양소 그리고 식사초대 -사진의 왼쪽이 아르헨티나의 신양기 선생이며 오른쪽이 아리모토 중경대학 교수이다 신양기선생의 주선이지 나 혼자의 계획이라면 텐트에 라면과 미숫가루만 먹다가 돌아왔을지 모를 일이다 물론 색다른 이야기도 더욱 많았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똘레도의 축제 - 필자의 엉컴(?) - 나는 여인의 곡선에 관심이 많다 신의 작품을 감상한다는 심정이다 아름답지 않은가 해변의 여인도 얼마나 대단하고 아름다운가 - 우리 집사람보다야 못하지만 -,


이 근행은 온 세상을 구제하는 길 벙어리도 말하게 하리라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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