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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셀로나 올림픽 그 -2
비행기 내에서 전도/기념촬영
종합자유게시판
 

1) 네델란드 항공의 비행기를 타고 암스테르담을 거쳐 스페인의 마드리드를 향했다 거기서 아리모토(일본 중경대학 교수 : 아르헨티나의 신양기 선생의 친구)선생의 부인의 안내로 바로셀로나를 향했었다 안내양들은 성직자의 예우로 좌석을 특별히 마련해 주었고 영어와 한글로 된 전도지를 나눠줄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기장실을 비롯한 식당등을 안내해 구경까지 시켜 주었다

아마 특별히 배려된 안내가 아니었을까 평생 첫 번째 타는 비행기가 지바(地場: 인간창조의 장소 : 천리교교회본부)가 아니라 그쪽이었다 신앙적으로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나에게는 그런 말못할 사정이 있었다

2) 바로셀로나의 콜론항( 콜롬버스가 떠난 항구)에서 깃발을 걸고 박자목소리도 청아하게 신악가를 부르고 있는데 경찰이 못하게 말려 기를 내리고 있다 우린 그 길로 바로셀로나 경찰청장을 만나(아르헨티나의 신양기 선생과) 취지를 말하고 허락을 받았다

[당신은 하라고 해도 쫄병들이 모르고 또 못하게 할지 모르니 전 경찰과 올림픽 관계자께 전하라]고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무전으로 [Chunrikyo = Tenrikyo]는 어디서든지 포교할 수 있도록 지시하게 되었고 그 삼엄한 경비 아래서도 누구하나 간섭하는 자 없이 무사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대전 엑스포의 경비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엑스포는 그게 통하지 않았다 우린 우째서 호각을 불지 않으면 안되고 종교행위와 잡상인의 구별조차 못하는 눈들을 지녔는지 모르겠다 대전 엑스포장은 경비근무자 혹은 정리자들의 호각포장이었다 월드컵 운영 봉사요원들 무슨 벼슬이나 한거라고 막 불어댈테니 걱정스럽다

3) 간 곳마다 기념사진 촬영이 세도해 왔다 어느 분은 전도하는 앞에서 두손을 모아 하염없이 울었는데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났었다 무슨 사연인지 그 연유를 알턱이 없다 통하지 않는 그였지만 아마 애절한 사연이 있지 않았을까 아마 오야사마는 그 혼을 보듬어 다독거려 주었으리라 내가 그걸 느겼었다

4) 미국인 제리스미스와 소련교민 아저씨 - 그리고 독일 이태리 프랑스 에스파니아인 등 한번밖에 만나지 않았는데도 영원한 지기 같았다 태극 마크가 선명한 저 부채 때문일까 아니다 교복의 힘일까 아니다 어쨌든 알리고 싶고 구제하고 싶은 오야사마의 어버이마음과 모든 인간은 모두가 神의 아들이요 형제라는 진한 핏줄이 그렇게 만든게 아닐까 아! 오야사마 당신의 어버이마음으로 온세계를 깨우치고 싶습니다

 5) 바로셀로나의 유명한 명소와 광장들을 그 때는 외고 있었는데 이름이 기억 안난다 무슨 왕이 세웠다는 엄청난 크기의 궁궐(?)과 광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하튼 팔자에 없는 귀한 구경과 대접을 받았다 황영조가 우승한 다음날부터 한국의 인기는 다른 것 같았다 아마 바로셀로라의 교민들은 그것을 절실히 느꼈으리라

6) 바로셀로나 영사관을 찾은 것이 기억난다 라면만 먹고 살거라고 잔뜩 넣고 간 라면이 남을 것 같아(죄송) 몇박스 분량을 전해주려 갔던 것이다 외국에서 한국인의 권익을 상향시키려 노력을 아끼지 않는 관계자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여권을 분실하고 찾아 떼를 쓰는 분 등 노고가 이만 저만이 아닌 걸 느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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