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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9  
18번의 옥고
월일은 없던 인간 없던 세계를 창조한 어버이인 거야 16-53
 

산어덕 가시밭 낭떠러지 비탈길도
칼날 같은 험한 길도 헤쳐 나가면 1-47

아직도 보이는 불속 깊은 물속을
그것을 지나가면 좁은 길이 보이느니 1-48

좁은 길을 차츰차츰 넘어가면 큰길이야
이것이 확실한 본길이니라1-49

이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닌 만큼
神 한줄기로 이것이 자신의 일이야 1-50

석조감로대의 역사가 좌절되었다
나라 경찰서에서 오야사마와 측근들에게 소환장이 왔다
본관이 아무리 엄중히 단속을 해도 너희들은 듣지 않으니
그럼 끈덕지게 신앙을 할 테면 해봐
그 대신 본관도 끈덕지게 말리겠다
누가 더 끈덕진가 두고 보자고 했다
나라 경찰서장인 우에무라 유끼나리가
수명의 경관을 데리고 출동하여 2단까지 되어 있던
감로대의 돌을 헐어 몰수하고
오야사마의 의류외 14점의 물품까지 몰수해 갔다

오야사마는 연행하러 오는 것도 어버이神이고
부르러 오는 것도 어버이神이다 마디에서 크게 되는 거야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어
이 집터는 어버이神의 말대로 되는 거야라고 깨우치셨다

당시 초대 신바시라(眞柱)의 수기에
이 무렵 많을 때는
밤에 세 번 낮에 세 번 정도 순사가 순찰을 왔다
그리고는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라도
숙박을 시켜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밤중에 순찰 나왔을 때 만약 친척이라도
숙박하고 있으면 시끄럽게 힐책을 했고
낮에 순찰 나왔을 때도 參拜者가 있으면
즉시 경찰에 연행하여 훈계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문간마다
참배사절이란 글을 써 붙였으나 신자들의 참배는
계속되었고 더러는 써 붙인 종이를
찢어 버리는 일도 있었다 하루도
참배자가 오지 않는 날이 없었고 순사가 오지 않는
날도 없었다고 天理敎 교조전에 적혀있다

야마무라고뗑 사건이후 경찰의 단속은 날이 갈수록 심해
손춤을 가르치거나 악기(신악가)를 연습하는 것을
보고도 연행하여
구류를 살리고 신자가 참배하면  
구류를 살리는 등 나라경찰서와
이찌노모또 분서는
오야사마가 감시 구금 투옥된 노고의 현장이다
일일이 그 사정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罪名이 수리방해죄가 있어 소개해 보겠다

때는 1883년 여름 오랜 가뭄으로 마을 사람들은
서낭당에서 祈雨祭를 올렸으나 별 효험이 없다
집터에 찾아와 기우제를 올려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경찰에서는 연일 엄한 단속이 있는지라 사절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물러가지 않고 잘못되는 일이 있으면
자기들이 부탁한 것임을 밝혀 절대로 폐를 기치지
않겠노라며 거듭 간청을 하는지라 오야사마께 여쭈었더니
[비를 내리는 것도 신 내리지 않는 것도 神
모두 神의 자유자재이다
마음에 따라 비를 내리게 할 테다
자아 시작하라 시작하라]고
하여 8월 15일 오후 4시
구름한점없는 하늘을 보고 미시마 마을
동남간 모퉁이에서 기우근행을 했다

악한 것을 제거하고 아무쪼록 비를 주소서
텐리오노미코도 나무 텐리오노미코도 나무 텐리오노미코도를
되풀이 되풀이 하면서 정성껏 근행을 올렸다
그 시각 신노스케와 이브리 두사람은
감로대에서 일심으로 기우를 기원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마을의 곤방에서 근행을 올렸다
이 때 동쪽하늘에 검은 구름이 나타나더니
건방에서 기우근행을 행할 때
시커먼 먹구름이 동쪽 산위에
나타나 순식간에 하늘을 뒤엎더니
장대같은 굵은 비가 뇌성과 함께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비는 미시마마을에만 내렸었는데
그 때 단속나온 경찰에 의해 연행되고
오야사마께도 소환장이 왔다
마을 사람들의 부탁에 의해 올린 기우제라도
비를 한곳에만 쏟아지게 했으니
수리방해죄와 길가에서 근행했다는 이유로
도로방해죄 등이 적용되었다고 한다

1881년부터의 옥고는 별 이유없이 치뤄졌지만
1883년 4,5,6월의 3개월간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월차제를 전후한 25,26,27일의 3일간은 경찰에 연행하여
유치시키고는 아무런 취조도 없이 돌려 보냈다
날로 달로 불어나는 참배자와
널리 퍼져가기만 하는 어버이신님의 의도에
대하여 당시의 경찰이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웠던가를
역력히 집작할 수 있다

일년에 두세 번은 연례 행사처럼 유치되었는데
오야사마의  최후의 獄苦는 1886년 연세 89세 때였다
경관은 할머니에게 붉은 옷을 입히기 때문에
사람들이모여 오는 것이라며
붉은 옷위에 검은 예복을 걸치게 했다
이해 겨울은 30년래의
큰 추위였다고 하는데도
89세의 고령의 몸으로 차가운
마루방에서 밝고 따뜻한 월일의 마음 한줄기로
용솟음치며 노고하셨다 생각만 해도 눈물 말만해도 눈물이
날 일이지만 이 세상을 즐거운 삶의 세계로 건설하시기 위한
길을 가르치시려고 어버이이기 때문에
겪으신 황송하고도 고마운 모본의 발자취이다

많은 자료가 소요되는 내용이라 다 수록하지 못하였지만
기회가 온다면 天理敎 교조전을 잘 배독해보면 오야사마의 노고를
실감하리라 믿는다 본인이 견학한 오야사마가
옥고를 치룬 이찌노모또 분서에는
오야사마가 노고한 방이 기념으로 남아있다
판자가 아니라 각목을 모로세워 꿇어 앉도록 한 것이었다
독한 일본 경찰이 인류는 모두 형제라는 것을
이유로 연행 투옥시키고
세계를 구제해야한다는 것에 투옥시키고
天皇이나 일반 백성이나 똑같은 魂이며
한결같은 子女라는 말에 투옥시킨 것이다

한갖 女子로써 충분히 잘 살 수 있는데도
月日의 現身으로 선택되시어 필설로 표현키 어려운 노고를
감내하신 것은 참자녀들이 충분히 걸을 수 있는
본길을 몸소 걸어시고
그 본을 남겨주심이다
[사방이 어두어져 분간할 수 없게 된다 그 때 근행의 손짓이
애매해서는 안 되니 근행의 손짓을 익혀라]고 강조하시고
[모본의 길을 걷지 않으면 模本은 필요없다 모본을 고치면
아무 것도 안된다 모본의 길밖에 길이 없는 거야]

존귀하신 혼을 지니신 오야사마
 50년 동안 몸소 보여 주신 모본이야말로
우리들 참자녀가 世界救濟를 목표로 나아가는 토대이다
이 모본의 길을 두고는 달리 길이 없다 오야사마께서 어떠한
어려운 가운데서도 즐겁게 용솟음치며
나아가신 확실한 발자취가 있기
때문에 오야사마의 도구인 참자녀들은
어떠한 身上과 괴로움속에서도
용솟음치며 극복할 수 있으리라

오야사마야말로 模本의 어버이시며
우리 人類의 永遠한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참말 든든하고도 感謝한 일이다 아- 오야사마

 이 대를 어떤 것이라 생각하는 가
이것은 온 세상의 첫째가는 보물이야 17-3

거기서 온 세상 사람들
모두 그 터전에서 창조한 거야 17-7


이 근행은 온 세상을 구제하는 길 벙어리도 말하게 하리라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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